시장(TAM)만 크면 적자라도 괜찮다고? [이철민의 PEF썰전]

입력 2021-06-07 05:50   수정 2021-06-07 11:05

올 상반기 경제 분야에서 가장 큰 뉴스를 꼽으라면, 단연코 쿠팡의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일 것입니다. 상장이 성공했다는 그 사실 자체도 놀라웠지만, 상장 직후 시가총액이 100조를 넘어가면서 한국계 기업으로는 삼성전자 다음으로 큰 기업가치를 기록한 것은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그런 충격의 기저에는 설립 이후 빠르게 성장을 구가해온 쿠팡의 재무상태가 그다지 건전하지 않았었다는 사실이 깔려 있습니다. 성장에 집중하면서 사업 영역을 계속 확장하며 수 천 억원대 적자를 지속적으로 기록해온 터라,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보던 이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상장 이후 쿠팡의 주가는 20% 정도 하락해 현재 시가총액은 약 80조원 내외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 한해 6천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한 이후 올 1분기에만 3천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상황인데도, 그러한 천문학적인 시가총액이 유지되는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최근 많이 언급되고 있는 것이 바로 TAM(Total Addressable Market)입니다. 특정 기업이 제품, 서비스의 확장이나 지역적 확장을 고려했을 때 이론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최대 매출 규모를 의미합니다.

해당 기업의 성장 잠재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추정하기 위해 그 기업이 진출 가능한 모든 시장을 독점하는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추정된 TAM의 규모에 따라 향후 성장 잠재력이 추정되고 기업가치는 그에 연동된다는 시각입니다.

테슬라, 쿠팡, 카카오 등 이른바 잘 알려진 성장 기업들은 물론 스타트업과 벤처기업들의 기업가치를 추정하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TAM은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테슬라가 전세계 모든 자동차 회사들의 시가총액을 합한 것보다 더 큰 시가총액을 가지게 된 이유를 TAM를 통해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전세계 자동차, 자율주행을 포함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ESS를 포함한 에너지, 차량 내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등의 테슬라가 진출했거나 진출할 수 있는 시장 규모가 무궁무진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테슬라는 그 모든 분야에서 선도적인 입지를 구축할 기술적, 사업적 기반을 이미 갖추고 있다고 믿는 것이구요.

쿠팡도 비슷합니다. 국내 인터넷 쇼핑, 음식 배달, OTT 서비스, 물류센터와 로켓 배송망을 활용할 수 있는 신선식품 배송, 이와 관련된 페이먼트 그리고 향후 진출할 수도 있는 아시아 국가들의 인터넷 쇼핑 등의 시장 규모를 모두 고려하면 지금의 시가총액이 정당화된다는 것입니다.
정반대의 사례로는 지마켓, 옥션 그리고 G9를 운영하는 이베이 코리아가 있습니다. 이베이의 한국 자회사이며 오픈마켓만을 운용하는 특성상, 국내 인터넷 쇼핑 시장으로 TAM이 국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M&A 과정에서 언급되는 이베이 코리아의 가격이 쿠팡의 1/10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이유입니다.

이 즈음에서 CFO들이라면 당연히 의문이 들 수 밖에 없겠죠. “시장 잠재력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익은 고려 대상이 아닌가?”라고 말입니다. 이 의문에 대해 TAM을 기반으로 투자를 집행하는 투자자들은 일단 TAM 큰 기업이 적자를 누적해가면서라도 시장에 빠르게 진출하고 시장 점유율을 높여 놓으면, 이익은 언젠가 따라온다고 답합니다.

본업인 쇼핑에서는 적자를 감내하더라도 부업인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 아마존의 사례가 대표적이라는 것이죠. 따라서 중요한 것은 큰 TAM을 규정한 뒤 사업을 시작하고, 신속하게 진출하여 고객을 선점함으로써 시장을 독과점하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과거에는 이런 시각이 극히 제한된 스타트업, 벤쳐 기업들에게만 적용이 되었습니다만, 이제는 PEF들은 물론 일반 기업들까지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M&A를 고려하거나 신규사업을 진출하는 과정에서, 최우선적으로 TAM이 고려되는 것이죠. 특히 인수를 하는 순간부터 재매각을 고민해야하는 PEF들에게는, TAM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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